[에너지데일리] 2024년은 어느 해보다도 “혼란과 타협”으로 기억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미국 대선이 있고, 유엔 플라스틱협약이 막바지 협상을 남겨두고 있다. 유엔 플라스틱협약은 다가오는 11월 25일부터 12월1일까지 부산에서 제5차 회의(INC5)를 통해 최종안을 채택한다.
이러한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올여름은 어느 해보다도 뜨거웠다. 벌써부터 내년 여름을 걱정한다. 그만큼 기후변화는 이제 우리의 현실, 아니 생활이 되었다.
탄소금융협회를 운영하다보니 훌륭한 전문가와 새로운 것을 만나는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 탄소를 포집하는 기술, 해상풍력을 하는 기업, 열분해 기술, 녹색기술을 쇼핑하는 금융기관, 마이크로 파이낸싱을 활용한 감축사업, 척박한 땅에 나무를 심겠다는 개인, 자발적 크레딧으로 펀드를 만들겠다는 기관 등등. 세계은행에서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영세한 기술회사, 석학에서 순진한 개인투자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문가, 기술, 금융기법을 만났다. 모두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 노하우, 경험, 네트워크를 내새워 투자처를 찾는다. 우리의 역할은 적절한 파트너를 찾아주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바닥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교토의정서가 파리합의문으로, 저탄소경제에서 녹색순환경제로, 감축사업에서 적응사업으로. 정책도 변모하고 사업도 다양해졌다. 더불어 기술도 금융도 좀더 포괄적으로 진화했다. 지역별로 지역특성을 반영하고 이해관계자들이 요구하는 시그너쳐 사업 또한 개발되었다. 여기에 플라스틱 협약이 더해저 순환경제로 가는 길을 좀더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회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유엔 플라스틱협약 제5차 정부간회의는 미국 대선과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이후에 개최된다. 즉 미국의 정치적 변수와 기후총회의 결과가 INC5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의 입장은 민주당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여 좀더 강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국내 석유화학업계에도 영향을 미쳐 안그래도 공급과잉으로 힘든 업황에 기술혁신에 대한 요구까지 가중되고 있다.
문제는 기술혁신을 하더라도 녹색기술이 진입할수 있는 여건, 즉 시장이 마련되어 있느냐다. 아니 더 중요한 것은 기술혁신으로 얼마나 큰 시장을 확보할수 있느냐다. 안타깝게도 녹색기술의 여건은 현재 그리 좋지않다. 경기가 좋지 않은것도 핑계가 된다. 녹색기술의 인덱스로 활용되는 유럽 배출권 시장 또한 침체가 오래가고 있다. 과거 100유로를 향하던 호기는 어디가고 70유로 진입도 못하고 있다. 그러나 배출권시장이 100유로를 간다한들 문제는 녹색기술의 시장점유율이 낮은 것이 문제다. 이는 대규모 투자자를 끌어들이는데 한계로 작용한다.
탄소포집기술의 사례를 예로 들어보자. 과거 CCUS 사업단을 필두로 포집기술을 서로 뽐내던 분위기는 어디가고 없다. 지금은 영세한 기술회사들만 기술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이는 다분히 국내기업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굴지의 메이져들조차 이름만 화려한 사업단, 자회사를 거느린채 어디서 보조금이 나오는지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유엔 플라스틱협약에 대한 방점을 플라스틱의 생산규제 여부에 두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보다 중요한 것은 과연 플라스틱협약이 탄소중립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에 더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석유화학산업은 8대 에너지다소비업종의 하나다. 플라스틱의 전과정에 걸쳐 탄소배출은 물론 독성에 대한 문제가 없는지 리스크관리가 필요하다. 대안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CCUS의 밸류체인과 폐플라스틱과 재생플라스틱의 밸류체인을 비교해보자. 폐플라스틱으로 열분해를 통해 열분해유를 생산한다든지, 열분해기술을 이용해 소각시설을 선진화한다던지, 생산단계에 발생한 가스를 다시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든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플라스틱 생태계를 예고한다. 즉 CCUS기술의 밸류체인과 폐플라스틱 기술의 밸류체인은 닮은 점이 많다. 또한 비슷한 역경이 예상된다.
첫째는 기술의 경쟁력과 완성도. 둘째는 비용과 시장진입. 셋째는 정책간 하모니.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술혁신을 유도하는 유인(인센티브)와 금융 메커니즘. 지난 전문가회의에서도 가장 크게 비중있게 다뤘던 부분이 금융 메커니즘이다. 교토메커니즘을 닮은 인센티브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이런 유인책 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논의는 무의미하다. 한 산업의 운명이 걸려있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어찌보면 플라스틱 문제는 우리 생활의 변화를 요구하는 문제일 수 있다. 플라스틱 대신 유리나 종이를 쓰는 대안도 있다. 하지만 이미 플라스틱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우리의 생활을 바꾸는 것은 또 다른 비용이 든다.
두달도 채 남지 않은 협상이 미국 대선만큼 흥미진진하다. 세간에 IN5라는 단어가 종종 회자될 것이다. 과거에 기후변화총회 COP를 처음 접한 상사가 “COP”가 뭐냐고 물을 적이 있다. 그것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이제 많은 후배들이 IN5라는 단어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하여 훌륭한 환경, 산업, 경제, 협상전문가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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