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기후정책, 로드맵 필요하다국내 탄소시장, ‘무늬만 시장’으로 전락…정책 불신배출권 거래, 효율성·ESG 투명성·평가기준 정비해야
▲ 김효선 한국탄소금융협회 부회장.
[에너지신문] 세계은행은 2024년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첫째,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계은행은 2024년을 기점으로 글로벌경제가 드디어 침체를 벗어났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선진국과 개도국의 격차는 더욱 벌어져 전세계 인구 중 8.5%가 극도의 빈곤에 직면하고 있다.
둘째, 전세계 인구 중 1/3 이상이 다양한 형태의 빈곤 즉, 식수, 위생, 교육, 전력에 대한 접근이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여기에 12억의 인구가 기후위기에 노출돼 홍수, 열사, 가뭄, 싸이클론과 같은 재난에 희생되고 있다.
특히 아시아와 북아프리카는 기후위기에 대한 취약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선정됐다.
셋째, 성평등에 대한 문제는 단순한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개발을 위해 꼭 필요한 필수과제가 되고 있다. 선진국의 남성 대 여성의 임금 격차는 좁혀지고 있는 반면 그밖의 지역의 임금격차는 여전히 큰 상황이다.
넷째, 부채문제는 최빈국일수록 더욱 심각하다. 팬데믹 이후 고금리 기조는 개도국이 지불할 이자비용만 4조 달러에 이르러 생존을 압박하고 있다.
다섯째, 팬데믹 이후 폭등했던 원자재 가격이 여전히 팬데믹 이전보다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다행히 2024년 대비 2026년 세계 원자재가격은 10%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원자재가격의 상승은 개도국의 농산물 가격이 선진국의 두 배로 식량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요약하면, 2024년은 팬데믹을 극복하는데 소요된 비용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그 유탄으로 기후안보, 에너지안보, 식량안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즉 2025년을 맞이해 세계경제의 질서는 물론 생존을 위협하는 리스크가 다양해지고 있다. 산재된 문제는 미중 간의 패권 경쟁으로 보호무역주의를 자극하고, 세계 공급망이 조각조각 나눠지면서 생존에 필요한 원자재 가격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기 어려운 상황을 도출하고 있다.
이뿐인가? 국내에는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힘의 균형이 깨져 정치적 혼란이 사회적 불안으로 확대되고 있고, 트럼프 2기의 신호탄으로 내수는 미리 떨고 있다. 증시는 강달러 영향으로 2500 고지를 넘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경제를 지탱하던 기간산업들은 고금리와 공급과잉으로 체질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특히 실물경제가 악화돼 국가 재정을 위협하고 있으며, 경기부진이 장기화될 조짐에 따라 가계부채 증가는 물론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에너지전환을 유도하는 정책은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으며, 한전과 가스공사의 미수금 문제는 천문학적인 부채비용으로 내적성장은 고사하고 대외 신뢰도마저 위협받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매출증가를 위해 장기계약을 맺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에너지기본계획은 가격변동성을 고려하지 않고 물량위주로만 운영하다 보니 공급안정성을 오히려 저해해 전략적인 마스터플랜이 아닌 성장의 족쇄가 되고 있다.
또한 국내 탄소시장은 유럽시장과 탈동조화로 예측가능하지 않은 무늬만 시장인 제도로 전락하고 있어 시장에 대한 불신이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2025년을 바라보며 에너지-기후정책의 내일을 위해 몇가지 정책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배출권거래의 효율성 제고이다. 배출권거래는 국내 에너지-기후정책의 가격시그널을 제공한다는 의미가 크다.
따라서 정책 비전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에너지전환이 이뤄지고, 경쟁력있는 녹색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도록 유도한다는 의미에서 배출권거래의 시장디자인은 배출권거래의 성패는 물론 에너지시장과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때마침 정부는 국내 배출권거래의 4차 감축기간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을 예고하고 있다. 유상할당을 늘리고 부문간 형평성을 좀더 확대하고 시장안정화 조치를 적극적으로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제도의 유연성과 엄격성의 충돌이다.
예를 들어 시장안정화 조치를 위한 예비분을 총량내에서 설정한다는 문제는 취지를 오해한 듯 싶다.
배출권 예비분은 전력의 예비분과 같이 배출권 총량에 대한 융통성있는 운영을 통해 가격폭등과 폭락을 제어한다는데 그 취지가 있다. 그러나 예비분을 총량내에서 떼어낸다는 것은 전체적으로 감축할 양이 증가함을 의미한다.
이는 내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비용을 시장활성화를 위해 뛰어드는 플레이어에게 그리고 배출권 판매기업에게 지불함을 의미한다.
안그래도 규제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기업입장에서는 감축비용이 늘어난다. 그러면서 간접배출량을 직접배출량과 함께 배출권거래에 포함시킨 문제는 시장이 커보일 뿐 시장을 예측하는데 모호성만 키워주는 꼴이 된다.
이 더블카운팅 문제를 다음 감축기간으로 미루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이는 더 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함에서 비롯된다.
EU가 제기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에 따른 국내기업의 불이익이다. 국내 배출권가격은 이산화탄소 1톤당 만원 대이다. EU-ETS 가격은 65유로 대이다.
즉 국내에서 만원을 지불한 철강이 유럽에 수출되면 65유로에서 만원을 뺀 비용을 정산해야 한다. 결국 수출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취지가 부메랑으로 국내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배출권거래의 활성화 보다는 정상화에 초점을 맞추기 바란다.
둘째, ESG경영의 내실을 기하고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TCFD 보고서 작성을 권하고자 한다. 국내 대기업 조차 기후리스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기업이 드문 현실이다.
TCFD는 The 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의 약자로,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 공개협의체를 의미한다. TCFD 보고서는 투자자, 주주, 대중에게 기후 관련 재무 위험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기업은 정밀한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기업의 재무정보를 상세히 제공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에너지기업의 TCFD 보고서는 어느 부문보다도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국내 증시에서도 TCFD 보고서의 활약은 앞으로 더욱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TCFD 보고서는 곧 그 기업의 기후 회복탄력성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전문가를 적극 활용하길 권한다. 그래야 투자자의 국내증시 이탈을 막을수 있다.
셋째, 친환경 관련 상벌에 엄격성을 부여하기 바란다. 온갖 ESG경영 수상이력을 보라. 더구나 공공기관 치고 ESG경영 대상을 안받은 곳이 있는가? 그렇다면 다 잘하고 있는가? 경영공시는 당연한 의무이고 투명한 정보공유 또한 당연하다.
모든 부문에 걸쳐 수상 리스트에 공공기관이 포진해 있다. 도대체 ESG경영 수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눠먹기식의 ESG경영 수상은 주는 기관도, 받는 기관도 부끄러워해야 한다. 이는 매우 부도덕적인 행위이다.
넷째 평가기준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 얼마전에 호텔등급 평가 공청회에 참석한 바 있다. 호텔등급을 평가하는 데에도 ESG경영을 가점처리하는 세상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의연하게 에너지절감을 평가항목에 넣는 것을 보고 아직도 ESG를 형식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의 관점에서 볼 때 에너지절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에너지효율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허위보고는 감점처리된다. 언뜻 보면 잘하는 것 같으나 감점과 가점의 차이에 따라 어떤 호텔은 허위보고하면서 등급을 유지할수 있는 틈새가 존재한다.
이처럼 공기업 경영평가 또한 부문별 한 개씩 존재하는 공기업들을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 할까? 한전이나 가스공사는 상장기업이다. 이들 기업의 주가는 5년전과 비교할 때 각각 25%, 5% 하락했다. 액슨모빌이 5년 내 50% 상승한 것과 크게 차이가 발생한다. 제발 투자자, 고객의 입장에서 평가기준과 방식을 개선하길 바란다.
세계은행 총재의 말을 상기시켜본다. “우리는 서로 얽혀 있는 글로벌 과제를 해결하고 발전을 도약시키기 위해 녹색, 포용적,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촉진해야 합니다” 맞는 말이다.
그럼 우리는 우리의 당면한 과제를 어떻게 풀것인가? 현실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 로드맵은 필요에 따라 수정해야 한다. 속도조절도 필요하다. 정치성향에 따라 정책이 좌클릭, 우클릭을 하는 것은 말그대로 경제주체를 우왕좌왕하게 만든다. 결국 정책과 시장에 대한 불신이 쌓인다.
2024년은 아주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더더욱 2025년에 대한 기대를 가져본다.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 가까운 것에서부터 평정심을 잃지 말고 차근차근 풀어보자.